신안 염전노예 사건 또? 반복되는 인권의 사각지대
전남 신안군 염전에서 지적장애인에게 수십 년간 강제노동을 시킨 사건이 또다시 드러났다. 과거 한 차례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염전노예 사건’이 재현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노동 인권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4년 대대적인 인권침해 사건이 터진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여러 대책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유형의 범죄가 반복된다는 점은 제도적 무능과 지역적 구조의 문제를 시사한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무려 37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오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그동안 공권력과 행정이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신안 염전노예 사건의 전말
전남 신안군 신의도에서 염전을 운영하던 A씨는 2019년부터 4년 반 동안 지적장애인 장모 씨에게 약 6,60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 원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한 임금체불 사건이 아니다. 피해자 장씨는 IQ 42의 중증 지적장애인으로, 1988년 성남에서 실종된 뒤 무려 37년 동안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염전에서 강제노역을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는 지난해 염전이 폐업하면서 요양병원으로 옮겨졌고, 병원이 후견인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가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가족이 37년 만에 그를 찾았을 때, 장씨의 상태는 참혹했다. 발톱이 빠지고 치아가 모두 부서진 상태였으며, 햇빛에 타고 굳은 피부는 수십 년간의 염전노동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장씨는 경찰 단속이 있을 때마다 산속이나 창고에 숨었으며, 염전주인 부자의 지시에 따라 공권력을 피한 기억을 생생히 증언했다. 하지만 가해자인 A씨는 자신이 오히려 장씨를 도와준 것이라고 주장하며 “더 이상 묻지 말라”는 입장을 보였다.
반복된 비극, 2014년 이후에도 변하지 않은 현실
사실 신안 염전노예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에도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동일한 유형의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도 신안군의 염전에서 장애인 수십 명이 감금과 폭행을 당한 채 강제노동을 해온 사실이 밝혀졌고, 이 사건은 인신매매·노동착취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 정부는 ‘장애인 근로 실태 전수조사’, ‘인권보호 대책’ 등을 발표했으나, 그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장 변화는 미비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 외부 접근이 어려운 지역사회 구조, 염전이라는 폐쇄적 산업환경이 결합되면서 외부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염전노동은 정식 근로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노동청의 감독망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결국 제도는 존재하지만, 집행은 부재한 현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왜 염전노예 사건이 계속 반복되는가
1. 지역적 고립과 산업의 폐쇄성
신안군은 10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부 인력이 들어오기 어렵고, 경찰이나 노동청의 감시가 제한적이다. 이러한 지리적 고립은 염전주인들에게 완전한 통제권을 부여하며, 노동자들은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환경에 놓인다.
2. 장애인과 무연고자의 사회적 취약성
피해자 대부분은 지적장애인, 무연고자, 사회적 고립층이다. 이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을 주겠다’는 말에 속아 섬으로 유인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임금이 지급되지 않고, 감금·폭행·협박 등의 방식으로 자유를 박탈당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자는 무연고자로 등록되어 있었고, 병원에서조차 ‘가족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후견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3. 솜방망이 처벌과 행정의 무능
가해자는 2014년 사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장애인을 착취한 전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고 사회로 복귀했다. 그 결과, 같은 범행이 반복된 것이다. 행정기관과 경찰은 피해자의 상황을 인지하고도 제대로 구제하지 못했다. 2023년에도 신안군청이 A씨를 수사 의뢰했지만, 피해자가 “잘 지내고 있다”고 진술했다는 이유로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가 학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거부 의사를 보였더라도, 그것이 강요된 상황임을 판단할 수 있는 전문적 개입이 전혀 없었다.
제도적 문제점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범죄가 아니라 제도적 무능이 낳은 구조적 인권 침해다. 경찰은 장애인 보호법,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만 접근했고, 인신매매나 노동착취 범죄로 확대하지 않았다. 국내 형법상 인신매매죄의 정의가 협소해, 강제노동 형태의 착취를 포괄하지 못하는 점이 근본적 한계로 꼽힌다. 국제적으로는 ‘팔레르모 의정서’가 노동착취형 인신매매를 엄중히 다루지만, 한국은 이에 대한 적용 범위가 협소해 처벌 수위가 낮다.
또한, 지역 행정기관의 ‘소극 행정’ 역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신안군은 2014년 사건 이후에도 염전 근로자 실태조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장애인 등록 여부나 인권 실태를 관리할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다. 사실상 ‘사건이 터져야만 움직이는’ 후진적 행정 구조가 여전한 셈이다.
사회적 파장과 여론의 반응
이번 사건이 알려지자 여론은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다. “아직도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한국이 OECD 회원국 맞나”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염전노예 다시는 안 된다’, ‘국가의 방관이 공범이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인권단체들은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장애인 인권센터 측은 “장씨가 염전 착취 피해자 명단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구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법률가들도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하더라도, 이는 강압에 의한 심리적 통제일 가능성이 크다”며 국가의 적극적 구제를 촉구했다.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첫째, 인신매매 및 노동착취에 대한 형사법적 개념을 국제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 단순한 임금체불이 아니라 강제노동, 감금, 착취라는 점을 명확히 규정해 강력한 처벌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둘째, 장애인 등 취약계층 근로자에 대한 실태조사와 보호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지자체 단위의 인권감시단, 복지공무원, 경찰, 시민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상시 점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염전산업의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는 천일염 산업의 자동화 및 규모화를 통해 ‘인력 의존형 착취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론
신안 염전노예 사건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비극’이라며 수많은 개선책이 논의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제도의 실패와 사회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결과다. 피해자가 37년 만에 발견될 동안, 수많은 행정기관과 감독기관은 존재했지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진정한 변화는 법과 행정이 “서류상의 존재”가 아니라 “현장의 보호”로 기능할 때 가능하다. 염전노예 사건은 한국 사회의 인권 민낯을 드러낸 경고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숙제다.